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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놓인 국기 태권도…경기침체·경쟁으로 어려움

한국관광공사는 한국전 참전용사와 입양인, 태권도 수련생들을 대상으로 한국 알리기에 열심이다. 그만큼 태권도와 한국은 떼어내서 생각할 수 없다. 그런 태권도가 위기에 빠졌다. 경기침체와 치열한 경쟁으로 태권도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 시카고 지역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면서 수련생 감소로 렌트비를 못내거나 타주로 이주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경기침체가 가장 큰 원인이다. 일리노이한인태권도협회 박창서 전 회장은 “학부모들이 생활비를 줄이면서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태권도와 같은 과외활동이다. 예전에는 300~400명 이상이던 수련생들이 요즘에는 150명이 고작”이라며 “워키간에 있는 도장은 1만평방피트 규모인데 지금은 120명 정도”라고 말했다. 박 전 회장에 따르면 일리노이 주에는 태권도장이 300~400개가 있으며 이중 100개는 한인 관장이 운영하고 있다. 태권도 보급 초기엔 그 희귀성으로 인해 수십마일 떨어진 곳에서도 태권도를 수련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행사에서 보여준 태권도 시범은 전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태권도가 올림픽 공식종목으로 채택되면서 전파에 가속도가 붙었다. 하지만 이후 과열경쟁이 시작됐고 태권도의 체력은 급격히 약화됐다. 프랭클린팍에서 35년째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USNTF 권덕근 회장은 “기존 도장보다 수련비가 저렴한 태권도장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경쟁이 생겼다. 또 동양 사람이 가르키는 태권도에 대한 호기심도 줄어들며 학생 수가 줄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 속에서의 국기 태권도에는 아직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노스브룩의 KH KIM‘s 태권도장을 운영중인 김기홍 미태권도위원회 재무이사는 “아직까지 태권도가 미국 땅에서 더 알려질 여력이 많다. 어린이에게는 인성교육, 성인들에게는 호신술과 건강을 지켜주는 수단으로 태권도 만한 것이 없다”며 “다만 태권도 단체가 힘을 합치지 못하고 구심점을 확보하지 못하는 것은 아쉽다”고 밝혔다. 박 전 회장도 “지금까지는 수련생이 오기만을 기다렸지만 앞으로는 학교 체육시간에 태권도가 포함되도록 하고 패스트푸드 체인점과 함께 공동 마케팅을 펼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일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춘호·박상우기자 polipch@koreadaily.com

2010-01-08

"너무 많이 생겼다”…누구나 도장 열 수 있어 과당경쟁 부추겨

태권도의 현 주소는 ‘2 For 1’이다. 한명을 데려오면 한명은 공짜인 마케팅까지 나올 정도다. 태권도장의 무한경쟁은 스승과 제자 사이가 경쟁자로 변할 수 밖에 없는 속성에 기인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온 사범은 일정 경력을 쌓은 후 인근에 태권도장을 열고, 제자인 백인 히스패닉 흑인 관원들이 지도자로 성장해 로컬커뮤니티에 태권도장을 차리면서 기하급수적인 경쟁 체제로 바뀐 것이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셈이다. 한미 양국간의 시스템 차이도 경쟁을 부추기는 이유다. 대한태권도협회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최소한 4단을 취득하고 사범 자격 시험에 패스한 후 생활체육지도자 과정까지 마쳐야 문화체육관광부가 인정하는 태권도장을 오픈할 수 있다. 반면, 미국에서는 누구나 태권도장을 열 수 있다. 다시 말해, 실력면에서 떨어지는 태권도 수련자가 마음만 먹으면 태권도장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경영방식이 시도돼 왔다. 또 무도(武道)에서 벗어나 축구, 게임 등 놀이문화와 곁들여 태권도를 접목시키기도 하고 띠 종류도 전통 5가지 색깔에서 10여가지로 다양하게 해 흥미를 유발한다. 그에 따른 수입증대를 기대하는 것이다. 도복 색깔을 바꾸는 곳도 있다. 치열한 자구책인 것이다. 가주 태권도협회의 구평회 회장은 “힘든 상황일수록 사범들이 더 열심히 뛰고 관원들에게 더 성의를 보여야 한다”며 “점점 스포츠화 되가고 있는 태권도가 무도 본연의 정신을 되찾을 때 차별화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부’ 이준구 사범 역시 “늘 자기발전에 앞장서고 확실한 목표의식이 있다면 어떤 위기도 헤쳐나갈 수 있다”며 “이런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매달 수만달러의 매출액을 기록하는 도장이 존재한다”고 조언했다. 태권도장의 위기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지난 2006년 8000개를 넘었던 태권도장이 최근 7000개 안팎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종주국의 자존심이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태권도협회는 최근 ‘태권도장 지원 특별위원회’를 열고 TV광고 등 태권도 중흥을 꾀하고 있다. 김판겸·박상우 기자

2010-01-08

‘원조 한류’가 흔들린다…불황 여파 태권도장 줄줄이 문닫아

1962년 미국의 중심 워싱턴 DC에 태권도 도장이 문을 열었다. 태권도의 대부로 불리우는 이준구 사범(81)이 선구자다. 부시 전 대통령,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아놀드 슈워제네거 가주 주지사 등 정계인사와 권투영웅 무하마드 알리, 영화배우 고 브루스 리, 척 노리스 등 스포츠 및 연예인들이 태권도를 수련했다. 미국 땅의 첫 ‘한류’가 바로 태권도다. 태권도는 코리아였고, 코리아는 태권도였다. 하지만 미국 진출 50년을 앞두고 태권도 도장이 위기를 맞고 있다. ‘태극 혼’이 흔들리는 것이다. 우선 문을 닫는 태권도 도장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 산호세 등 베이지역에서부터 남가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여기에는 10년 넘게 태권도 전파에 앞장서 온 도장들도 포함돼 있다. 세계선교태권도협회 정종오 회장은 “미 전역에서 5,000여명의 한인 사범들이 활동중인 것으로 추산된다”며 “이들의 도장 가운데 10~20%는 문을 닫았거나 닫을 위기에 놓였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지속적인 경제한파다. 살림살이가 어려워지면서 학부모들이 우선적으로 아이들의 태권도 수련을 중단시키고 있다. 관원들이 점점 줄어들면서 렌트비 내기가 버거워지면서 문을 닫는 것이다. 발레호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북가주 태권도협회 윌리엄 김 회장은 “태권도가 수영, 배구, 테니스처럼 모든 학교에 크레딧으로 인정이 안 돼 학부모들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태권도를 그만두게 한다”며 “자기 건물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지 않는 이상 버티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북가주에 200여 개의 태권도장이 있었지만 최근에 20~30%가 문을 닫은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불경기 전에 이미 치열한 경쟁 체제로 접어들며 태권도장은 휘청이고 있었다. 태권도 보급 초기엔 그 희귀성으로 인해 수십마일 떨어진 곳에서도 태권도를 수련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행사에서 보여준 태권도 시범은 전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990년대에는 많은 한국의 사범들이 미국으로 건너오기 시작했고, 잘 나가는 태권도장은 수백명의 관원들을 보유할 만큼 붐이 일었다. 그 탄력으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경기종목으로 채택됐고 태권도의 글로벌화가 이뤄졌다. 하지만 영광은 거기까지였다. 이후 과열 경쟁이 시작됐고, ‘태권도의 체력’은 급격히 약화됐다. 김판겸·박상우 기자

2010-01-08

흔들리는 '원조 한류' 태권도장 "너무 많이 생겼다"

태권도의 현 주소는 ‘2 For 1’이다. 한명을 데려오면 한명은 공짜인 마케팅까지 나올 정도다. 태권도장의 무한경쟁은 스승과 제자 사이가 경쟁자로 변할 수밖에 없는 속성에 기인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온 사범은 일정 경력을 쌓은 후 인근에 태권도장을 열고 제자인 백인.히스패닉.흑인 관원들이 지도자로 성장해 로컬커뮤니티에 태권도장을 차리면서 기하급수적인 경쟁 체제로 바뀐 것이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셈이다. 한미 양국간의 시스템 차이도 경쟁을 부추기는 이유다. 대한태권도협회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최소한 4단을 취득하고 사범 자격 시험에 패스한 후 생활체육지도자 과정까지 마쳐야 문화체육관광부가 인정하는 태권도장을 오픈할 수 있다. 반면 미국에서는 누구나 태권도장을 열 수 있다. 다시 말해 실력면에서 떨어지는 태권도 수련자가 마음만 먹으면 태권도장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경영방식이 시도돼 왔다. 또 무도(武道)에서 벗어나 축구 게임 등 놀이문화와 곁들여 태권도를 접목시키기도 하고 띠 종류도 전통 5가지 색깔에서 10여가지로 다양하게 해 흥미를 유발한다. 그에 따른 수입증대를 기대하는 것이다. 도복 색깔을 바꾸는 곳도 있다. 치열한 자구책인 것이다. 이를 두고 일부 태권도인들 사이에서는 “시대와 현지에 맞게 변화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태권도 고유의 정신이 밑바탕 되지 않으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며 “무도에서 경기 흥행 시범 위주 등 스포츠화 돼가고 있는 만큼 태권도인들이 힘을 합칠 때”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태권도장의 위기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지난 2006년 8000개를 넘었던 태권도장이 최근 7000개 안팎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종주국의 자존심이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태권도협회는 최근 ‘태권도장 지원 특별위원회’를 열고 TV광고 등 태권도 중흥을 꾀하고 있다. 대부 이준구 사범은 “늘 자기발전에 앞장서고 확실한 목표의식이 있다면 어떤 위기도 헤쳐나갈 수 있다”며 “이런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매달 수만달러의 매출액을 기록하는 도장이 존재한다”고 조언했다. 천일교·박상우 기자

2010-01-07

불황 여파 태권도장 줄줄이 폐업···'원조 한류'가 흔들린다

1962년 미국의 중심 워싱턴 DC에 태권도 도장이 처음 문을 열었다. ‘태권도의 대부’로 불리우는 이준구 사범(81)이 선구자다. 부시 전 대통령,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아놀드 슈워제네거 가주 주지사 등 정계인사와 권투영웅 무하마드 알리, 영화배우 고 브루스 리, 척 노리스 등 스포츠 및 연예인들이 태권도를 수련했다. 미국 땅의 첫 ‘한류’가 바로 태권도다. 태권도는 코리아였고, 코리아는 태권도였다. 하지만 미국 진출 50년을 앞두고 태권도 도장이 위기를 맞고 있다. ‘태극 혼’이 흔들리는 것이다. 우선 문을 닫는 태권도 도장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이중에는 십수년 넘게 태권도 전파에 앞장서 온 한 도장도 포함돼 있다. 세계선교태권도협회 정종오 회장은 “미 전역에서 5000여명의 한인 사범들이 활동중인 것으로 추산된다”며 “이들의 도장 가운데 10~20%는 문을 닫았거나 닫을 위기에 놓였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지속적인 경제한파다. 살림살이가 어려워지면서 학부모들이 우선적으로 아이들의 태권도 수련을 중단시키고 있다. 관원들이 점점 줄어 들면서 렌트비 내기가 버거워지면서 문을 닫는 것이다. 메릴랜드 컬럼비아 소재 킥스USA 태권도 남정구 관장은 “불황의 여파로 일자리를 잃은 미국인 가정들이 자녀의 태권도 수련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인근에 문을 닫은 태권도장이 줄을 잇고 있고 이 상태로라면 우리 도장 역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불경기를 맞은 대부분의 한인 비즈니스와 마찬가지로 태권도장 역시 휘청이고 있다. 태권도 보급 초기엔 그 희귀성으로 인해 수십마일 떨어진 곳에서도 태권도를 수련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행사에서 보여준 태권도 시범은 전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990년대에는 많은 한국의 사범들이 미국으로 건너오기 시작했고, 잘 나가는 태권도장은 수백명의 관원들을 보유할 만큼 붐이 일었다. 그 탄력으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경기종목으로 채택됐고 태권도의 글로벌화가 이뤄졌다. 하지만 영광은 거기까지였다. 이후 과열 경쟁이 시작됐고, ‘태권도의 체력’은 급격히 약화됐다. 천일교·박상우 기자

2010-01-07

흔들리는 '원조 한류' 태권도장···"너무 많이 생겼다"

태권도의 현 주소는 '2 For 1'이다. 한명을 데려오면 한명은 공짜인 마케팅까지 나올 정도다. 태권도장의 무한경쟁은 스승과 제자 사이가 경쟁자로 변할 수 밖에 없는 속성에 기인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온 사범은 일정 경력을 쌓은 후 인근에 태권도장을 열고 제자인 백인.히스패닉.흑인 관원들이 지도자로 성장해 로컬커뮤니티에 태권도장을 차리면서 기하급수적인 경쟁 체제로 바뀐 것이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셈이다. 콘코디아 대학교 태권도학과 강창진(66) 교수는 "아무리 좋은 것도 많이 있으면 가치를 나타내기 힘든 법"이라며 "경제한파 속 과당 경쟁을 펼치고 있는 것이 요즘 태권도장의 현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한미 양국간의 시스템 차이도 경쟁을 부추기는 이유다. 대한태권도협회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최소한 4단을 취득하고 사범 자격 시험에 패스한 후 생활체육지도자 과정까지 마쳐야 문화체육관광부가 인정하는 태권도장을 오픈할 수 있다. 반면 미국에서는 누구나 태권도장을 열 수 있다. 다시 말해 실력면에서 떨어지는 태권도 수련자가 마음만 먹으면 태권도장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경영방식이 시도돼 왔다. 또 무도(武道)에서 벗어나 축구 게임 등 놀이문화와 곁들여 태권도를 접목시키기도 하고 띠 종류도 전통 5가지 색깔에서 10여가지로 다양하게 해 흥미를 유발한다. 그에 따른 수입증대를 기대하는 것이다. 도복 색깔을 바꾸는 곳도 있다. 치열한 자구책인 것이다. 가주 태권도 보급의 초창기 멤버인 세리토스 김찬용(75) 관장은 "시대와 현지에 맞게 변화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태권도 고유의 정신이 밑바탕되지 않으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며 "무도에서 경기 흥행 시범 위주 등 스포츠화 돼가고 있는 만큼 태권도인들이 힘을 합칠 때다"고 말했다. '대부' 이준구 사범 역시 "늘 자기발전에 앞장서고 확실한 목표의식이 있다면 어떤 위기도 헤쳐나갈 수 있다"며 "이런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매달 수만달러의 매출액을 기록하는 도장이 존재한다"고 조언했다. 태권도장의 위기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지난 2006년 8000개를 넘었던 태권도장이 최근 7000개 안팎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종주국의 자존심이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태권도협회는 최근 '태권도장 지원 특별위원회'를 열고 TV광고 등 태권도 중흥을 꾀하고 있다. 박상우 기자

2010-01-06

불황 여파 태권도장 줄줄이 문닫아···'원조 한류'가 흔들린다

1962년 미국의 중심 워싱턴 DC에 태권도 도장이 문을 열었다. ‘태권도의 대부’로 불리우는 이준구 사범(81)이 선구자다. 부시 전 대통령,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아놀드 슈워제네거 가주 주지사 등 정계인사와 권투영웅 무하마드 알리, 영화배우 고 브루스 리, 척 노리스 등 스포츠 및 연예인들이 태권도를 수련했다. 미국 땅의 첫 ‘한류’가 바로 태권도다. 태권도는 코리아였고, 코리아는 태권도였다. 하지만 미국 진출 50년을 앞두고 태권도 도장이 위기를 맞고 있다. ‘태극 혼’이 흔들리는 것이다. 우선 문을 닫는 태권도 도장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LA, 밸리, 엘몬테, 인랜드, 리버사이드, 코스트메사 등 지역도 광범위하다. 15년 넘게 태권도 전파에 앞장서 온 한 도장도 포함돼 있다. 세계선교태권도협회 정종오 회장은 “미 전역에서 5,000여명의 한인 사범들이 활동중인 것으로 추산된다”며 “이들의 도장 가운데 10~20%는 문을 닫았거나 닫을 위기에 놓였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지속적인 경제한파다. 살림살이가 어려워지면서 학부모들이 우선적으로 아이들의 태권도 수련을 중단시키고 있다. 관원들이 점점 줄어 들면서 렌트비 내기가 버거워지면서 문을 닫는 것이다. 화랑 태권도의 제임스 오 관장(47)은 “태권도가 수영, 배구, 테니스처럼 모든 학교에 크레딧으로 인정이 안 돼 학부모들이 태권도를 먼저 그만두게 한다”며 “자기 건물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지 않는 이상 버티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불경기 전에 이미 치열한 경쟁 체제로 접어들며 태권도장은 휘청이고 있었다. 태권도 보급 초기엔 그 희귀성으로 인해 수십마일 떨어진 곳에서도 태권도를 수련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행사에서 보여준 태권도 시범은 전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990년대에는 많은 한국의 사범들이 미국으로 건너오기 시작했고, 잘 나가는 태권도장은 수백명의 관원들을 보유할 만큼 붐이 일었다. 그 탄력으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경기종목으로 채택됐고 태권도의 글로벌화가 이뤄졌다. 하지만 영광은 거기까지였다. 이후 과열 경쟁이 시작됐고, ‘태권도의 체력’은 급격히 약화됐다. 박상우 기자 swp@koreadaily.com

2010-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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